안녕하세요, 스타일지기입니다.
소니코리아는 지난 2017년 가을, RX100M5와 함께 하는 RX트래블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습니다. 여행을 계획 중인 분들에게 여행용 카메라로 최적화된 RX100M5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우수 여행기를 선정하여 글로벌 여행 매거진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 게재하는 특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만큼, 숨겨진 여행 욕구를 자극하는 멋진 사진과 글을 만나실 수 있는데요. 소니코리아 블로그에서도 RX트래블러들이 작성한 우수 여행기를 소개합니다. ☺
이번 시간에 선보이는 여행기는 RX트래블러 고유석 작가의 오사카 여행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교통수단인 ‘전차’를 중심으로 한 특별한 오사카의 모습을 RX100M5로 담았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겠습니다.
“걷는 여행이 조금 지겨워진다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노면전차에 몸을 싣자. 휴식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이다.”
오사카는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오사카를 여행할 때 내겐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복잡한 전철이나 값비싼 택시는 피하자.’ 그러나, 열감이 느껴지는 발바닥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여행의 피로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문득 오사카 여행을 준비할 때 온라인 검색으로 우연히 발견한 노면전차가 떠올랐다. 그 전에는 이 거대한 도시에 노면전차가 존재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한카이센에 오르다
한카이센(阪堺線)은 100년 넘은 노면전차 노선이다. 1909년에 개통했으며 총 길이 14.1킬로미터로 오사카 서남부와 사카이(堺市) 서북부 지역을 잇는다. 과거에는 일본 각지에서 노면전차를 운행했는데 지하철과 도로가 발달하면서 운영상의 문제로 하나둘 사라졌고, 주요 도시마다 간신히 1~2개 노선이 명맥을 잇고 있다. 오늘날 노면전차는 관광객에게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현지인에겐 출근과 통학을 책임지며 여전히 생활과 밀접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에비스초 역(恵美須町駅)에서 하마데라고엔 역(浜寺公園駅)까지는 노면전차로 약 1시간이 걸린다. 에비스초 역에서 출발하는 모든 전차는 노선의 중간 지점인 아비코미치 역(我孫子道駅)에 정차하고, 텐노지 역(天王寺駅)에서 전차를 갈아타야 하마데라고엔 역까지 갈 수 있다. 사전에 이 정보를 모르던 나는 무작정 에비스초 역에서 출발하는 전차에 올라탔다. 이후 전차가 정차한 아비코미치 역을 종점이라 생각했으니, 발길이 닿는 곳을 세상의 끝으로 여긴 옛사람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전차의 1회 탑승 요금은 210엔, 종일권은 600엔이다. 특별한 경험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치고는 꽤 저렴한 편이다. 여행 중 가장 거슬리는 것이 바로 동전이다. 환전을 할 수도 없고, 계속 가지고 다니자니 부담스럽다. 그런 점에서 잔돈을 따로 거슬러주지 않는 노면전차는 동전을 모두 소진할 수 있는 유용한 기회다.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 종점으로 향하는 긴 여정은 잠시 체력을 충전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와 이번 여정을 함께한 동행 역시 전차에 자리를 잡자마자 곧 잠이 든다. 전차의 창을 통해 스미는 노르스름한 빛과 적당한 실내 온도는 잠시 졸기에 적당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나는 목적이 있기에 두 눈을 부릅뜨고 안팎으로 시선을 옮긴다.
#전차에서 바라본 장면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간 접하던 일본영화나 잡지의 몇몇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한카이센 노면전차는 주로 주택가를 통과한다. 주택가와 인접한 전차라면 그 공간에서 분명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웨딩 사진가가 직업이다 보니 삿포로와 나고야, 도쿄에서 웨딩 촬영을 진행한 적이 있다. 아직 오사카에서는 촬영해보지 못했는데, 훗날 이곳에서 웨딩 촬영을 기획한다면 한카이센을 꼭 탑승해볼 생각이다. 전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으면 그들의 소소한 일상이 엿보인다. 전차 안과 밖은 분리되어 있지만 마치 하나의 풍경처럼 따스한 온기가 감돈다. 100년의 세월이 가져다 준 자연스러운 분위기. 일본이 아니더라도 해외에 나가면 종종 트램이나 전차를 타곤 했다. 느린 속도로 도시를 여행할 수 있고, 무엇보다 타고 내리기 편한 점이 여행자에게 가장 큰 매력이란 생각이 든다.
노면전차 내부에는 앞뒤로 운전석이 있다. 전차가 진행하는 방향의 맨 앞자리에 앉으면 기관사가 전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기관석은 지하철처럼 단절되지 않아 더욱 실감이 난다. 깔끔하지만 예스러운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고 절도 있게 수신호를 하는 기관사의 모습 또한 흥미롭다. 전차의 배차 간격은 굉장히 짧다. 그만큼 차량이 많다는 의미일 터. 각 차량마다 디자인과 분위기가 다르고 현대식 전차부터 운행한 지 80년 이상 된 낡은 전차까지 노선을 달린다. 가장 오래된 차량은 모161형(モ161形) 7전차로 짐작하기도 어려운 수십 년의 세월을 달렸는데도 아직 운행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차량 운행 정보는 매일 오전에 확인 가능하다. 스케줄이 맞는다면 가장 오래된 전차를 탑승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역에서 내린 뒤
에비스초 역에서 출발한 전차는 아비코미치 역에 정차한다. 전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자 오사카 도심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해가 어스름하게 저무는 퇴근 시간이기에 사람들의 움직임은 꽤 분주하다. 하교하는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철도 건널목을 지나 내 옆을 쌩 하니 지나간다. 역에서 한참을 머물러본다. 영상을 기록하기에도, 사진을 담기에도 좋은 곳이란 생각에 바쁘게 움직인다. 색색의 전차와 오르내리는 승객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사 먹는데 편의점의 왕국 일본답게 손이 닿는 것마다 모두 맛있다.
“역사에 설치된 물건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시계와 낡은 의자, 붉은 눈을 깜빡이는 듯한 신호등, 기울어진 햇빛에 반짝이는 선로…. 나의 애정 어린 시선이 그들에게 닿는다.”
전차역이 주택가에 위치하기에 역 주변 마을은 또 다른 여행지이다. 발걸음을 주택가 깊숙한 곳으로 옮긴다. 보물찾기 하듯 골목을 쏘다니면 새로운 것이 주는 설렘보다 낡은 것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언덕을 지나 강변에 다다른다. 여행 중에는 자칫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수 있다. 전차 여행은 그런 강박에서 벗어나 잠시 여유를 느끼게 한다. 느긋한 타인의 여유를 바라보며 감정이입을 하는 것도 휴식이다.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아저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다시 전차역으로 돌아간다.
일본은 몇몇 도시에 노면전차를 운행하고 있다. 한카이센 노면 전차는 그 중 하나다. 이것은 실제 교통수단이면서 외국인에게는 관광 포인트가 되고 있다. 정보를 검색하면 노선의 주요 관광 포인트를 알려주기도 하고 계절별로 벚꽃이 아름다운 역과 가을 단풍이 화려한 역을 안내하기도 한다. 편도가 아닌 종일권을 구매하여 마음 놓고 승하차를 반복하는 것도 이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도심에서 벗어나 이름 모를 동네로 향한 한카이센 노면전차 여행은 내게 오사카의 소소하고 달콤한 기억을 남겼다.
지금까지 RX트래블러 고유석 작가의 특별한 오사카 노면전차 여행기를 함께 만나보셨습니다. 노면 전차라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교통수단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데요. 느리지만 따뜻한 아날로그적 느낌이 가득한 여행기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카메라 RX100M5로 촬영했다는 점이 사뭇 역설적이기도 합니다만, RX100M5의 새로운 매력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상, 스타일지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