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인터뷰

[작가에세이] 나의 낡은 카메라,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by 김민철 작가

스타일지기 2024. 8. 27. 17:21

A7M2 l SEL2470Z 

작가님은 어떤 카메라 쓰세요?”

책이 출간될 때마다 받는 질문입니다. <처리어리>라는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고 영상 뒤에 사진을 몇 장 넣어두었더니 같은 질문이 반복되곤 하죠. SNS를 통해서도 수시로 사용하는 카메라 기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일일이 대답을 하는 것도 번거로워서 아예 따로 게시물을 올려놓았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묻습니다. “작가님은 어떤 카메라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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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간단합니다. 소니 A7M2, 렌즈는 딱 하나. F4 24-70mm의 줌렌즈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쉬운 대답 앞에서 저는 늘 조금씩 주저하게 됩니다. 사진만을 위해 이렇게 무거운 카메라를 매 순간 챙겨야 한다는 걸 납득할 사람들이 있을까. 하루치 여행을 마치고 나면 부어오른 발과 함께 욱신 거리는 어깨와 손목도 함께 챙겨야 한다는 걸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이왕이면 애초에 이 세계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세계를 기꺼이 감당할만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제 카메라를 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젓곤 합니다. “이렇게 무거운 걸 여행 내내 들고 다녔다고?” 하지만 이토록 무겁고, 귀찮고, 버거운 세계에 저는 오래 눌러 붙어있을 예정입니다. 가능하면 오래 오래. ? 기쁘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어려움은 한 장의 사진을 찍는 순간 다 사라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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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메라와 함께 여행을 떠난 것도 벌써 8년이 넘어 갑니다. 8년이면 카메라 세상에서는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기 딱 좋은 시간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저는 이 늙은이 카메라가 암만해도 믿음직스러워서 다른 카메라로는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있습니다. 렌즈도 딱 하나에만 안주하고 있죠. 조금 더 망원 렌즈가 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조금 더 밝은 렌즈가 있으면 좀 더 안정적으로 찍을 수 있겠다 싶은 판단이 스칠 때도 있지만, 그 욕심에 부응하다가는 여행 자체가 부담스러워질 것이 그려지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저는 다시 저의 카메라와 렌즈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물론 이것은 카메라와의 우정과, 새로운 기기들 앞에서는 겁을 바짝 먹는 저의 성향과, 제가 가진 것이 언제나 최고라고 생각해버리는 저의 게으름까지 더해진 결과입니다. 최고일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최고가 아닐리도 없죠. 누가 봐도 카메라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저는 전문가가 아니니, 복잡해보이지만 이 카메라를 조금만 조작하는 것으로 제가 원하는 모든 결과물에 단숨에 도착할 수 있는 이 카메라가 어떻게 최고가 아닐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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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사진에는 노란 색감이 유난히 부각되는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필름 카메라를 고집할 때도 저는 노란 색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필름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따뜻한 그 색감으로 사진을 찍고 나면, 제 기억도 그 사진에 고정이 되어서 유난히 더 따뜻하고, 유난히 더 다정하고, 유난히 더 아스라한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현실이냐 아니냐는 저에게 불필요한 질문이죠. 저는 그 색감이 저에게 딱 맞는 세상이라 느꼈거든요.

8년 전, 소니 카메라와 처음 만난 후 저는 한 동안 그 색감 찾기에 골몰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설정을 바꿔보고, 이런 햇빛 아래에서는 또 ISO를 바꿔보고, 저런 실내 속에서는 기본 설정을 바꿔보았죠. 그리고 끝내 이 카메라를 손쉽게 조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기쁨이란. 마침내 이 카메라와 함께 제가 좋아하는 순간을, 제가 원하는 색감으로, 제가 원하는 구도로 고정시킬 수 있다니.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포토샵으로 다 가능하다고. 원하는 구도로 크롭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고, 색감을 살짝 만지는 것 정도는 보정도 아니라고. 그건 그냥 세수하고 스킨 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게 귀찮은 사람도 있습니다. 겨우 세수까지 마치고 나면 또 뭘 바른다는 것 자체가 귀찮아져서 아예 세수를 미루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저에겐 아무런 보정을 할 필요도 없이 이 정도 결과물을 내주는 이 오래된 카메라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게 무리도 아니죠. (아래의 이미지들은 모두 무보정입니다. 물론, 이 사진들을 보면서 여기를 조금만 보정하면 더 좋을 것 같고, 저기를 더 보정하면 사진이 아주 돋보이게 될 것임을 아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예민한 눈이 아주 부럽지만, 포토샵을 잘 다루는 그 능력도 아주아주 부럽지만,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이 정도에서 만족을 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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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카메라의 끈은 너덜너덜해진지 오래입니다. 카메라 구석구석 흠집이 없는 부분도 없습니다. 이런 일을 방지하고자 오래 전에는 카메라 가방도 사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시 짐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저는 카메라라도 제대로 챙기는 여행자가 되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카메라를 위한 최선의 환경도 중요하지만, 저의 여행 환경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카메라를 가지고 떠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아무래도 저는 이 낡고 흠집이 많고 저와 같이 늙어가는 이 카메라를 고장날 때까지 쓸 운명인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제 사진이 보기 좋다며 저와 같은 카메라를 살 꿈을 꾸는 분이 있다면, 그 꿈은 얼른 접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카메라는 이 순간에도 끝없이 발전하는 중이고, 조금 많이 가볍고, 훨씬 더 최신의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 더 가벼운 걸 두고 왜 더 무거운 걸 사나요? 더 좋은 걸 두고 왜 구형 모델을 사나요? 여러분, 여러분은 현명한 선택을 하실 수 있어요. 물론 이 이야기는 내 오래된 반려 카메라에겐 모두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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